卍 불교 교리 강좌 2975

고요한 환경에 집착하지 마라

고요한 환경에 집착하지 마라 ​淸 靜 ​ 산사의 여름 오후는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다. 인적은 없고 햇살만 가득한 널찍한 마당을 마주하기 어려울 때는 가끔 음악을 듣는다. 적막한 고요함을 깨뜨릴까봐 음악도 조심스럽다. 산중에 어울리는 음악은 피아노 연주다. 낭랑한 선율 사이로 고요함과 새소리, 바람소리도 들려온다. 엊제부터인가 고요함을 즐기게 되었다. 그런데 옛 스승인 박산무이 선사는 수행자가 환경의 고요함을 찾는 것을 크게 경계한 바 있다. 참선하는 데는 무엇보다 교요한 환경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고요한 환경에 빠지게 되면 사람이 생기가 없고 고요한 데 주저앉아 깨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대개 사람들은 시끄러운 환경을 싫어하고 조용한 곳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수행자가 항상 시끄럽고 번거로운 곳에서..

육바라밀이란 가르침이 있다

육바라밀이란 가르침이 있다 ​ 인생은 불꽃 속의 싸락눈 같으므로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아쉬워하지 말자. 지붕 위로 황소 끌어 올릴 것처럼 어떤 일도 억지로는 하지 말자. 발이 많은 지네도 구를 때가 있듯이 모든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도 능력 발휘를 하지 못했다 하여 한탄하지도 말자.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는 자연계에서 모두 기록되고 있다. 내가 도둑질한 것을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도 자연계, 공기, 생명의 정보에는 기록 이 되고 있다. 정직한 마음으로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방황하지 말고 생각과 생각 사이에서 헤매지 말고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하자. 인생이란, 태산 을 넘고 나서도 계곡과 절벽을 만나 진퇴양난의 냉혹한 현실에 부딪힐 수가 있다. 그때 좌절하거나 포기하면 죽은 자식 눈 열어 보기가 되고 ..

나만의 미황사를 만들어라

나만의 미황사를 만들어라 ​畢竟無佛及衆生 ​ 새벽예불 때 항상 암송하는 스님들의 발원문을 행선축원行禪祝願이라 한다. 내용 가운데 힘주어 생각하는 대목이 있다. 나의 이름을 듣는 이는 삼악도(지옥, 아귀, 축생으로 태어나는 것)를 면하고 나의 모습을 보는 이는 해탈을 얻게 하소서. 이와 같이 중생을 교화하기를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하여 결국 부처도 중생도 없는 세계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聞我名者免三途 見我形者得解脫 如是敎化恒沙劫 畢竟無佛及衆生 ​ 나는 이 구절을 내가 살고 있는 절에 대입시킨다. 바쁘고 힘들고 지칠 때 TV나 라디오, 신문, 인터넷에서 미황사라는 이름을 듣거나 보기만 해도 힘과 용기와 위안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누군가에게 든든한 마음의 고향이 되어 주는 절을 만드는 일은 나에게 큰 ..

인생을 너무 빡빡하게 살지 말자

인생을 너무 빡빡하게 살지 말자 ​ 전통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접목시키려는 노력하는 가운데 자신의 역활을 묵묵히 다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자. 그런 것이 쉬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깊은 내공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항상 밝고 쾌활한 성격으로 주변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면서 뚜렷한 신념을 갖고 살아가자. 불교가 지향하는 목표는 '일체중생의 이고득락(離苦得樂)과 상락아정(常樂我淨)'이다. 모든 중생들이 괴로움을 떠나 행복을 얻고, 번뇌 없는 청정한 덕에 이르자는 것이다. 어떤 것도 둘로 나누거나 차별하지 말고 분별심 내지 말자. 자신만 훌륭한 척 우쭐대며 자신은 승자로 찬양하고, 상대를 패자로 폄하하는 유치하고 천박한 사고도 깨끗하게 추방하자. 필자는 얼마 전, 어느 가족의 방문 요청을 받고 갔는데, 초등..

죽음은 차원을 옮겨가는 여행 같은 것

죽음은 차원을 옮겨가는 여행 같은 것 ​ 암세포와 싸우는 동안 64킬로그램이었던 법정 스님의 몸무게는 45킬로그램까지 내려앉앗다. 병상에서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육신이 거추장스럼다. 빨리 번거로운 거 벗고 다비에 오르고 싶다." 남에게 페 끼치는 일을 극히 싫어했던 스님은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본의 아니게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치게 된 것을 무척 거북해했다. 담배도 안 피우고 산골 맑은 공기 속에서 사는 스님이 왜 폐암으로 투병했는지 궁금해한다. 사실은 스님 나이 네 살 때 세속의 아버지가 폐질환으로 돌아가신 집안 내력이 있다. 법정 스님이 떠나기 이틀 전, 나는 속가의 어머니와 함께 마지막 으로 스님을 만났다. 부처의 세상에서 속가의 인연이란 사소한 점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피붙이의 정을 어떻게..

머물 때와 떠날 때를 알아야 한다

머물 때와 떠날 때를 알아야 한다 ​ 겨울이 오면 나무는 낙엽을 떨어뜨려서 흙을 덮어주고 땅속에 생명들을 보호해주며 더불어 살아간다. 사람도 모든 것을 적당한 시기에 버릴 줄 알면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족제비 지나간 곳에 노린내 풍기듯이 부정적 행동의 뒤끝에는 반드시 그 흔적이 남는다. 자신에게 좋을 것만 취하려는 마음이 탐심(貪心)이고, 싫어하는 것에 등 돌리는 마음이 진심(嗔心)이다. 탐욕 속에서 살아가는 한 고통을 피할 수 없다. 부족한 사람이 높은자리에 앉으면 이랫사람을 더 혹독하고 모질게 대하는 법이다. 평화롭게 살려면 떠나가려는 것을 억지로 붙잡지 말고, 원치 않는 것이 오더라도 억지로 피하지 말아야 한다. 오고 가는 것을 억지로 막고자 들개처럼 비명 지르고, 눈보라에 이빨 부딪..

참스승은 모습만으로도 충분한 가르침이다

참스승은 모습만으로도 충분한 가르침이다 ​無上甚心微妙法 ​ 출가 초기, 나는 많은 방황을 했다. 수행에 대한 열망은 높은데 수행의 방법과 방향에 대해 제시해준 스승을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스승 많았지만 나의 고집과 폭넓게 바라보는 시각이 부족해 곁에 있는 눈 밝은 스승을 알아보지못했다. 해인사 학인시절 윗반 스님과 다툼 끝에 대중생활을 포기하고 뛰쳐나왔다. 그 길로 찾아간 곳이 광주 시내에 자리한 송광사 포교당이었다. 잠시 그곳에 머물며 지냈는데 마당이 좁아 새벽 예불을 하다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럴 때면 도로까지 나가 목탁을 두드렸다. 미명에 어슴푸레 보이는 키 큰 빌딩들이 해인사의 숲처럼 느껴지고, 목탁을 두드리면 돌아오는 공명이 좋아서 8개월 남짓 금남로에서 도량석을 했다. 5.18..

옳고 그름을 가려가며 살아가자

옳고 그름을 가려가며 살아가자 ​ 기생식물(寄生植物)이 다른 식물에 들러붙어 그들의 삶이 시들어가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가듯 자기만 살아남기 위해 불의와 부정에 두 눈 질끈 감고 기생식물처럼 남의 피를 빨아가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강인한 의지와 부단한 노력으로 은산철벽(銀山鐵壁)도 뚫고 나가야 한다. 부지런한 농사꾼에게는 좋은 땅, 나쁜 땅이 없다. 모든 일은 자기하기에 달렸으므로 조건을 탓하지 말자. '은빛으로 빛나는 산과 쇳덩어리처럼 단단한 벽'도 인과법칙이면 뚫고 나갈 수 있다. 조리로 물푸듯 헛되고 어리석은 짓은 떠나보내고 옳고 그름을 가려가며 살아가자. 단점 가운데서도 장점을 찾아내면 버릴 사람 없고, 장점 가운데서도 단점만 찾아내면 쓸 사람 하나 없다. 밝은 마음은 태..

첫 공부의 기쁨, 과거의 깨달음까지 모두 버려라

첫 공부의 기쁨, 과거의 깨달음까지 모두 버려라 ​出世 ​ 우리는 많은 것들로부터 수없이 도움을 받는다. 그중에 좋은 스승을 만나 수행에 도움을 받는 것은 복 중의 으뜸 복이다. 살다 보면 여러 방면에서 스승을 만나지만 부처의 지견知見을 열어주는 스승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주위에는 잘못된 견해, 잘못된 생각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바른 생각을 열어주는 스승은 수행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데 든든한 힘이 된다. 견해는 배움이나 경험에서 나오지만 수행에서 직접 나오는 부처의 지견이라야 평 화로운 해탈의 길이 열린다. 부처의 지견은 공空, 무집착無執着, 무상無相이다. 《법화경法華經》에서는 "부처의 지견은 깨달음(覺)이다. 깨달음의 지견을 여는 것(開)과 깨달음의 지견을 보이는..

나라의 어른들은 침묵하지 말라

나라의 어른들은 침묵하지 말라 ​ 우리는 생활에 유용한 것이면 옛것에서도 비우고 익혀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잘못을 지적해주는 스승이나 어른들이 있어야만 더없는 행복을 누릴 수가 있다. 좋은 인격을 형성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 선조들은 콩을 심을 때도 세 알씩 심었다. 한 알은 날짐승, 한 알은 땅속의 벌레, 한 알은 가꾸어서 사람이 먹도록 배려한 것이다. 과일을 수확할 때도 하나를 꼭 까치밥으로 남겨주었고, 음식을 먹을 때는 '고수레' 하면서 약간의 음식을 미물들을 위해 던져주었다. 이렇게 공존의 삶을 지향하며, 내가 바라는 바를 먼저 상대에게 베풀었다. 다른 생명체라 하여 가혹한 행위를 하면, 온갖 고통으로 되돌아온다. 항상 공존의 삶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특히 상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