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 어둠속 등불 1390

아내의 기사회생과 관음기도

아내의 기사회생과 관음기도​ 일타 스님 일제시대 평양에 살았던 유제규(劉濟奎)거사는 평양교당(平壤敎堂)에 다니다가 젊은 법사인 정지월(鄭指月)스님으로부터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문득 신심이 샘솟는 것을 느낀 유제규는 보문품을 배껴 부부가 날마다 보문품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렇게 매일 보문품을 외우기를 몇 달, 1928년 12월 18일 밤의 일이었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그날, 가족끼리 저녁식사를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9시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유제규 거사는 매일의 일과대로 보문품을 세번 독송하고, '관세음보살' 3천념(三千念)을 한 다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약 30분정도 숙면을 취하였을까? 비몽사몽간에 흰옷 입은 노부인(老夫人)이 나타나서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

용화사 정승바위

용화사 정승바위 옛날 이곳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예지 2리(내립석)에 이씨 성을 가진 정승이 있었다. 이 정승은 벼슬자리에 있을 때라 한양(서울)에서 살았고 이곳에는 그의 부인이 홀로 2층집을 지키며 살았는데 부인 김씨는 남편과 너무 오래 떨어져 살았기에 남편이 보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어느 날 때마침 노승이 시주를 하라고 찾아왔다. "스님, 제가 영감님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겠어요?" 부인은 쌀 한 말을 시주하면서 노승에게 애원하듯 물었다. "글쎄요, 있긴 있는데....." "네에, 말씀해 주세요, 어떤 것이든 하겠어요. 영감님과 만날 수 있다면요." 노승은 마당 한가운데 있는 연못을 가르키며 "저 못에 소금을 석 섬 뿌리시오. 그리고 동리 입구에 불쑥 튀어나온 바위를 깨뜨리면 소원을 이..

오어사 창건설화

오어사 창건설화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절로서 처음에는 항사사라고 불렀다. 오어사라는 이름은 혜공선사와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겨루기 위해 물고기를 각각 잡아 먹었다가 다시 살려 내는 내기를 했다. 그러나 살아난 고기가 한 마리밖에 없자 두 스님이 나의 고기 (吾魚)라고 말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절에는 혜공, 원효, 자장스님, 삼국유사를 지으신 일연스님 등 훌륭한 스님들이 수도를 한 곳이다. 문화재 자료 제 88호로 지정된 앞면 3칸, 옆면 2칸의 문과 팔작 지붕으로 된 대웅전이 있으며, 보물 제 1280호로 지정된 고려 동종은 1995년 오어지에서 발견된 것으로 조성 연대가 분명하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원효대사의 삿갓과 수저도 특이한 볼거리이다. 천 년도 더 지났..

봉전사 창건설화

봉전사 창건설화 절이 들어선 천등산을 옛날에는 대망산(大望山)이라 불렀다. 산 정상 가까이에 거무스름한 바위가 하나 있고, 이 바위 아래 동굴이 있는데 천등굴이라고 하였다. 능인 대덕(혹은 의상 대사)은 늘 이곳에서 깨달음을 향한 수행 정진에 몰두하였다. 어느 날 선녀가 나타나 온갖 방법으로 스님을 유혹하였으나 스님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곁눈조차 주지 않았다. 결국 선녀는 포기하면서, “스님은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이제 스님의 깊은 의지를 알았으니 부디 깨달음을 이루시길 빕니다. 스님의 수행에 도움이 되도록 옥황상제의 등불을 남기고 떠납니다.” 라고 하였다. 선녀가 말을 마치자 곧 바위 위에 커다란 등이 놓였고, 굴 안이 대낮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스님은 이후 부단한 노력으로 지혜를 얻었고, 이로 인해..

보리사 경주 남산설화

보리사 경주 남산설화 아주 오래 전 쇠벌이라 불리던 경주는 맑은 시내가 흐르는 푸른 벌판이었다. 평화로운 쇠벌에 두 신이 찾아왔다. 맑은 시냇가에서 빨래하던 처녀가 두 신을 보았다. 강한 근육이 울퉁불퉁한 남신과 부드럽고 고운 얼굴의 여신이었다. 두 신은 아름답고 기름진 쇠벌의 경치를 둘러보더니 남신이 입을 열어 "우리가 살 곳은 바로 이 곳이로구나!" 하고 외쳤다. 이 때 강가에서 빨래하던 한 처녀가 너무 놀라 "저기 산 같은 사람 봐라!" 해야 할 것을 "산 봐라" 하고 소리를 질려버렸다. 비명에 놀란 두 신이 발길을 멈추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다시는 발을 옮길 수 없었다. 처녀의 외침으로 두 신이 산으로 변화게 된 것이다. 여신은 남산 서쪽에 아담하게 솟아오른 망산이 되었고, 남신은 장엄한 남산이 ..

백률사 부례랑

백률사 부례랑 『삼국유사』에 백률사 대비관음상의 영험과 관련된 설화가 다음과 같이 전한다 692년(효소왕 1)에 국선(國仙)이 된 부례랑(夫禮郞)은 693년 3월에 화랑의 무리를 거느리고 강릉 지방에 이르렀다가 말갈족에게 잡혀갔다. 일행들은 당황하여 돌아갔으나 안상(安常)만 홀로 그를 뒤쫓아 갔다. 효소왕은 이 소식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는데 그 때 상서로운 구름이 천존고(天尊庫)를 덮으므로 창고를 조사하게 했더니 현금(玄琴)과 신적(神笛)의 두 보물이 없어졌다. 5월 15일 부례랑의 부모는 백률사 관음상 앞에서 여러 날째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향나무로 만든 탁자 위에 현금과 신적이 있고 부례랑과 안상 두 사람도 불상 뒤에 와 있는 것이 보였다. 부모가 놀라 물었다. 부례랑이 적에게 잡혀..

도리사 창건설화

도리사 창건설화 아직 겨울이라기엔 이른 늦가을이었다. 옷은 비록 남루했지만 용모가 예사롭지 않은 한 고구려인이 신라 땅 일선군(지금의 경상북도 선산)에 있는 부자 모례장자 집을 찾아왔다. "어떻게 제 집엘 오시게 되었는지요?" 모례장자는 행색과는 달리 용모가 순수한 낯선 객에게 점잖고 융숭하게 대하면서도 일말의 경계를 금할 수 없었다. "나는 묵호자라는 고구려 승려입니다." 인연이 있는 땅이라 찾아왔으니 나를 이곳에 묵을 수 있도록 주선하여 주십시오." 당시는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지 않은 때인지라(눌지왕 때) 모례장자는 묵호자의 불법에 관한 설명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전생부터의 인연이었는지 아무래도 낯선 객이 신비스럽고 큰 불도를 알고 있는 대인인 듯하여 지하에 밀실을 지어 편히 지..

기림사의 유래

기림사의 유래 사위성의 장자 수달다(須達多)는 바시익왕의 재무 관리로서 고독한 사람을 불쌍이 여기고 보시를 좋아하여 사람들이 급고독(給孤獨) 장자라고들 불렀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감동한 장자는 부처님과 승가를 모시기 위해 사위성 근처에 정사를 건립하고 싶었다. 그런데 기타(祇陀)태자가 소유하고 있는 원림 만큼 마땅한 곳이 없었다. 그 땅은 넓고 평평한데 수목이 무성하고 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도 가까이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꼭 그 땅에 정사를 세우고 싶어 태자에게 찾아가 열심히 땅을 팔아 줄 것을 요청했으나 태자는 번번히 거절하였다. 장자의 물러서지 않는 돈독한 뜻을 본 태자는 장난 삼아 만약 황금으로 그 땅을 깔아 덮는다면 팔겠노라고 말하였다. 이에 장자는 크게 기뻐하여 정말로 황금을 내다 땅..

해은사 영험있는 봉돌

해은사 영험있는 봉돌 해은사의 성황당에는 부부신 즉 수로왕과 허비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그 영정 앞에는 수로왕의 비 허후가 왔다는 망산도에서 가져 온 봉돌이라 불리는 영험이 있다는 돌이 놓여 있다. 직경 15센티미터 정도의 봉돌은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자연석이라고 할 수 있다. 손때가 묻어 엷은 광채가 빛나고 있다는 것이다. 봉돌과 함께 고곳에는 아름드리 돌절구도 있었다고 하는데 절을 고쳐 수리할 때에 찬물샘과 같이 묻어버렸고 봉돌만 남아 있게 되었다. 절에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이 전해 주는 이야기로는 자못 영험있는 이야기이다. 여신도들이 본전에서 불공과 치성을 드리면서 방석에 종이를 깔고 그 위에 약간의 쌀을 놓아 우고 봉돌로 갈아 본다는 것이다. 이때 쌀알이 봉돌에 붙으면 생남을 한다고 믿으며 또..

해은사 해일을 없앤 원력

해은사 해일을 없앤 원력 부처님의 뜻에 근거한 원력은 한없이 큰 것이다. 하늘의 혜택을 골고루 갖춘 가락국 영토의 중심부인 김해에는 금벌의 옥토를 자랑하며, 한편으로는 옛날부터 백제와 신라가 탐을 내어 끊임없이 병합하려 하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부지런하였으며 사계절에 따른 자연의 산물은 넉넉하여 쉴새 없이 사람들은 살기 좋은 가락 지역으로 모여 들었던 것이다. 반도 남단이면서 태평양의 거센 파도의 직접적인 피해를 면할 수 있었으며 서북풍이 몰아치는 겨울절기에는 모진 찬 기운과 눈보라의 동해로부터 보호된 지역들이었다. 그러나, 연중 두 세 번의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이 땅의 기후조건으로 하여 폭풍이 몰아치거나, 폭우가 쏟아지는 시기에는 어김없이 김해 지역은 낙동강의 내륙으로 흘러드는 강물과 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