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이야기 108

야화=빈대잡다 사람잡겠네

옛날 조선시대에 어떤 노인이 60세에 상처하고 70살에 19살 먹은 처녀에게 새 장가를 들었다. 첫날밤 촛불아래 내 새색시가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데 고것 참 겁나게 이쁘대. 그래서 재빨리 겹겹 옷 벗기고 눕혔는데 이런… 마음 뿐이지… 물건이 말을 들어야지… 애만 쓰다가 땀만 한사발 흘렸지. 근데 내 색시도 첫날 밤에 할 일을 못해서 그런지 잠을 안 자대. 엎치락 뒤치락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서 “잠도 안 오는데 물컷(무는벌레)이나 잡을래요” 하더니 속옷까정 훌라당 벗어던지고서는 방을 여기저기 다니면서 빈대를 잡는 거야. 상상을 해봐. 일렁이는 촛불아래 19살 먹은 처녀가 알몸으로 빈대 잡는 광경을…. 아아… 그 광경을 보자니 한 물 간줄 알았던 내 그것이 기운을 차리더군. 난 빈대 덕에 마침내 황홀한 첫날..

전설=가막이라는 예뿐 계집아이

옛날 옛적에"가마귀골"이라고 부르는 두메 산골에 "가막"이라는 예뿐 계집아이가 살았습니다. 그런데 가막이가 한창 재롱을 부리던 다섯살 되던 해 졸지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부모님이 장을 보러 강 건너 읍내로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만 나룻배가 뒤집혀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일가 친척 피붙이라곤 하나도 없던 가막네 집인지라 오빠는 소금장수 에게 팔려 어디론가 떠나 갔고,가막이도 이웃 할머니가 기르다가 또 다시 먼 곳으로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가막이는 나이가 들어 갈 수록 그 옛날 부모님과 행복하게 살던 모습이 떠올라 무척 슬펏지만 어려서 떠나온 마을 이름도,부모님의 이름도 몰라 늘 우울한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무심한 세월은 흘러흘러 이젠 가막이의 모습도 예쁘고 복스런 처녀로 ..

하수댁 셋째 며느리 꽤

하수댁에게 세번째 며느리가 들어왔다. 첫째 며느리를 쫓아내고 둘째 며느리도 들들 볶아 쫓아낸 시어머니는 또 팔을 걷어붙였다. 한번 쫓아낼 때 힘들었지 두번째는 어렵지 않았고 새로 들어온 셋째도 보아하니 기가 보드라워 보여 콧방귀를 뀌었다. 유복자 외아들을 금이야 옥이야 키워서 며느리랍시고 들어온 년한테 빼앗길 수는 없는 법! 찢어지게 가난한 오씨네 집에 매파가 들락거릴 때 부모들은 반대했지만 첫째딸 순덕이는 보릿고개 걱정 없는 하수댁네에 세번째 며느리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열여덟살 순덕이는 이날 이때껏 부모 말 안 따른 적이 없고 누구하고도 말다툼 한번 한 적 없는 순둥이라, 그 억센 하수댁에게 시달려 한달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어미가 말렸지만 생전 처음으로 제 고집을 꺾지 않았다. 시집간 순덕이는 입..

소나기의 유래

옛날에 한 스님이 무더운 여름날 동냥으로 얻은 쌀을 자루에 짊어지고 가다 큰 나무 그늘에서 쉬어가게 되었는데, 때 마침 농부 한 사람이 소로 논을 갈다가 그 나무 그늘에 다가와 함께 쉬게 되었습니다. ‘곧 모를 내야 할 텐데 비가 안 와서 큰일이네요. 날이 이렇게 가물어서야, 원.‘ 농부가 날씨 걱정을 하자 스님은 입고 있던 장삼을 여기저기 만져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해지기 전에 비가 내릴 겁니다.” 그러나 농부는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에이, 스님 농담도 잘 하시는군요. 아, 이렇게 쨍쨍한 날 무슨 비가 온단 말입니까?” “두고 보시지요. 틀림없이 곧 비가 올 겁니다.” 스님은 비가 온다고 하고, 농부는 비가 오지 않는다며 서로 제 말이 옳다고 우기는 상황이 되었습니..

초야지담 일분수수 (初夜之談一盆水受)

한 노처녀가 우물에서 물을 길어 물동이를 이고 막 돌아서는 데, 마침 갓 혼인한 이웃집 새 신부가 물을 길러 왔다. 신부를 본 노처녀는 물동이를 인 채 그 신부에게 첫날밤 얘기를 들려달라고 졸랐다. 곧 신부는 생긋이 웃으면서 첫날밤의 경험을 얘기했다. "내가 신방에 들어가 앉으니 신랑이 보고 좋아하면서 나를 껴안았어요. 그러고는 내 몸을 더듬더니 내 옷을 홀랑 벗기고, 안아서 이불 속에 반듯이 눕히는 것이었어요. 나는 어떻게 하는지를 보려고 신랑이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지요. 신랑도 옷을 벗고 내 배 위에 엎드리더니, 어디서 갖고 온 것인지는 몰라도 무엇인가 딱딱한 것을 가지고 내 두 다리 사이에 집어넣고 힘껏 누르고 휘젓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말이지요. 얼마 후에 그만 내 온몸이 갑자기 고단해지고 팔..

덕필유린(德必有隣)

조선 철종때 경상도 상주 땅에 서씨 성을 가진 농부가 살았는데, 사람들은 그를 그냥 '서선달'이라고 불렀다. ​ 원래 선달이란 과거 시험에 급제는 했으나 아직 벼슬을 받지 못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지만, 이 사람은 무슨 급제와는 관련이 없었고 그냥 사람이 심성이 착하고 무던해서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 서선달은 남의 땅을 빌려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 인가는 봄이 왔어도 그해 농사를 지을 비용이 없을 정도로 곤궁 하였습니다. ​ 생각다 못한 그는 부산 쌀가게에서 장부를 담당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큰 아들을 찾아갔습니다. ​효자 아들은 주인께 통사정을 하여 6개월치 월급을 가불받아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 서선달은 100리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

사화=아첨의 말도 당당해야 통한다

중국 전국시대에 손꼽히던 책사 장의가 손님으로 초 나라에 머물고 있을 때의 일이다. 아무래도 왕의 태도가 서먹서먹하여 그다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게다가 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아 하인들은 투덜 거리고 있는 실정이였다. 그래서 장의는 한 꾀을 생각해 내서 왕에게 알현을 청했다. "이 나라에서 저는 그다지 쓸모가 없으므로 북쪽 위나라로 갈까 합니다" "너 좋을 대로 하도록 하여라" "그런데 위나라에서 바라시는 것은 없습니까? 그곳에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보석이든 황금이든 또는 상아든 우리 초나라에서는 없는 것이 없다. 특별해 위나라에서 바라는 것은 없어" "그렇다면 페하께서는 그 길은 마음에 없으심니까?" "그 길이라니?""예 중원의 여자들은 선녀들과 구분 못할 정도 입니다" 장의는 바로 이것이다 하고 역..

야담 =조선 영조때 겹혼인경사

조선 영조 때 그 유명한 박문수 어사가 산중을 가다가 시장하기 짝이 없는데다 날도 저물어서 부득이 어떤 집에 들어가 하룻밤을 유(留)하게 되었다. "비록 누추하지만 자고 가시는것은 있는 집이니 상관없습니다만 해드릴 밥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이런 딱한 소리를 하는 여주인에게 박어사는 "밥은 걱정 마십시오. 낮에 먹어 둔 것이 있으니까 잘 자리만 부탁합니다." 라고 하면서 들어가 자게 되었는데 말이야 그렇게 하였지만 사실 점심도 굶었던 터라 기진맥진 하였다. 그런데 곁에 있던 딸이 어머니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 손님이 무척 시장해 보입니다. 아버지제사에 지을 웁쌀을 가지고 밥을 해 드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아버지 제사가 곧 다가오는데... 그래라. 아버지 제사에 지낼 쌀로 밥을 ..

거짓말에 감동한 과부

한 촌녀(村女)가 있었는데 자못 자색(姿色)이 고왔으나 일찍 과부가 되었다. 때때로 남편의 무덤에 가서 통곡을 하곤 했는데 비애(悲哀)의 정을 가누질 못하였다. 과부의 고운 자색에 어울릴만큼 이목구비가 수려한 한 청년이 그 무덤 앞을 지나다가 곡절(曲折)도 묻지 않고 다짜고짜 자기도 그 앞에 앉아 목놓아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여인이 괴이히 여겨 물으니 청년이 답하기를, "내 처가 얼마 전에 죽어 항상 비회(悲懷)를 품고 있소. 이제 마침 이곳을 지나다가 아주머니의 슬픈 얼굴을 보고, 또한 애통한 곡을 듣고보니 나도 모르게 곡을 하게 된 것이오." 여인은 남편을 잃게된 사연을 말하고는 통곡을 그치지 않았다. 청년은 더욱 크게 곡하며 말하기를, "내 아내가 살아 생전에 늘 자신의 손가락이 짧은 것을 자책하..

소금장수 곽서방 이야기

아주 아주 먼옛날에 노름판에서 모든걸 잃은 곽서방, 저수지에 몸을 던지려는 그때 물 위로 한 여인이 … 소금장수 곽서방은 노름판에 잘못 끼어들어 돈을 다 잃었다. 만회하려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함께 다니던 당나귀 (PONY 2)도 헐값에 넘겨 그 돈으로 또 골패를 잡았지만, 그마저도 이경(밤 9~11시 사이)을 넘기지 못한 채 빈손이 되었다. 가을 추수하면 받기로 하고 이집 저집 깔아 놓은 외상 소금값 치부책도 반값에 넘기고 또 붙었지만 새벽닭이 울 때 다 털렸다. 막걸리 한 호리병을 나팔 불고 노름판을 나와 마당 구석에서 순식간에 날려버린 당나귀를 안고 어깨를 들썩였다. 장마 뒤끝이라 서산 위에 그믐달이 애처롭게 걸려 있었다. 소금창고를 짓고 객주를 차리려던 포부도, 참한 색시를 얻어 장가가려던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