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상식 998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팔상성도(八相成道) - 3.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 ​ ​12세 되던 해 어느 봄날, 태자는 부왕과 함께 농경제의 파종 식에 찬가하였다. 그때 태자는 농부들의 마르고 고단한 모습과 쟁기를 끄는 소들이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리는 것을 보았다. 또한 쟁기가 지나간 뒤 뒤집혀진 흙 사이로 기어 나온 벌레들을 잡아먹기 위해 날아든 새들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이에 싯다르타 태자는 염부나무 밑에서 그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깊은 명상에 잠겼다. 이를 지켜 본 정반왕은 태자를 세상과 더욱 멀어지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태자의 세상에 대한 고뇌는 더욱 깊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성문 밖을 나섰다가 동문, 서문, 남문에서 각각 늙고, 병들고, 죽은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그 후 ..

卍 ~불교 상식 2022.12.16

바람강생상(毘藍降生相) ​

팔상성도(八相成道) - 2. 바람강생상(毘藍降生相) ​ ​ ​마야부인은 해산 일이 다가오자 인도의 관습에 따라 친정인 데바다하로 향하였다. 친정으로 가는 도중 룸비니 동산에 이르렀을 때였다. 동산에는 아름다운 사리나무 꽃들이 만개해 있었고, 왕비는 상서로운 사리나무 숲을 뻗어 사리나무가지를 잡으려는 순간 산기를 느꼈다. 일행은 급히 처소를 마련하였으나 마야부인은 나뭇가지를 붙잡고 선 채로 아무런 고통 없이 아들을 낳았다.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동서남북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한 손으로 하늘을, 또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사자후를 토하였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도다. 모든 세상이 고통에 잠겨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 천상천하..

卍 ~불교 상식 2022.12.15

도솔래의상 (都率來衣相)

팔상성도(八相成道) - 1. 도솔래의상 (都率來衣相) ​ ​오래 전 수메다라는 한 수행자가 살고 있었다. 그 때 연등(燃燈)이라는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셔, 모든 사람들이 연등부처님을 공양하고자 온갖 향과 꽃, 훌륭한 음식을 준비하고 연등부처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연히 그 곳에 들른 수메다는 연등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쁜 마음이 되어 “나는 여기에 깨달음의 씨앗을 뿌려야겠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수메다는 부처님께 바칠 공양을 준비했다. 그러나 모든 공양물은 부처님께 바쳐져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 수메다는 아름다운 일곱 송이의 꽃을 들고 가는 여인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다가가 꽃을 팔 것을 간청하였다. 꽃을 팔지 않으려고 그녀는 자신이 들고 있..

卍 ~불교 상식 2022.12.14

연기설( 緣起說 : Pratityasamut pada)​

연기설( 緣起說 : Pratityasamut pada) ​ ​ ​연기설(緣起說)은 모든 현상은 무수한 인(因:도셔)과 연(緣:pratyaya)이 상호 관계하여 성립되므로, 독립, 자존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조건과 원인이 없으면, 과(果:phala)도 없다는 설로, 일체현상의 생기소멸(生起消滅)의 법칙을 연기( 緣起:Pratityasamut pada)라고 한다. 연기설(緣起說의 간단한 형태는, “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면 그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도 멸한다.”는 것으로, 중생이 생사유전(生死流轉)의 고통을 받는 경우의 연기를 유전연기(流轉緣起), 수행하여 해탈로 향하는 연기를 환멸연기(幻滅緣起)라고 하며, 사제설(四諦說)도 일종의 연기설로서 고(苦) ..

卍 ~불교 상식 2022.12.05

도제(道諦 : Marga)에 대하여

도제(道諦 : Marga)에 대하여 ​ ​ ​도제(道諦)는 고(苦)와 집(集)의 멸(滅)을 실현하는 길을 말한다. 지나친 욕망을 없애는 길, 욕망을 적절하게 조절하여 열반에 이르는 방법이 도제이며, 열반에 이르기 위해 인간이 실천해 나가야 바른 수행방법이 8정도(八正道)이다. 바른길(正道)이란 곧 중도(中道)를 말하는데 중도의 중이란 가운데 길이 아니라, 적절한 길 바른 길을 의미한다. 그래서 정도(正道)라고 하며, 8정도(八正道)는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으로, 점진적인 수행 단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유기적으로 수행하는 길을 말한다.

卍 ~불교 상식 2022.12.04

멸제(滅諦 : Nirodha)에 대하여

멸제(滅諦 : Nirodha)에 대하여 ​ ​ ​멸제(滅諦)는 갈애(渴愛)가 남김없이 없어진 상태를 말하며, 애착 • 번뇌 • 탐착의 마음을 버림으로써 고(苦)를 여일 수 있다는 것으로 이상적 경지로서 열반(涅槃)이라고 말하며, 마음이 갈애의 속박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해탈(解脫)이라고도 한다. 멸제는 갈애에 물들지 않고 행동하는 마음의 자유로운 상태이며 참된 즐거움이다. 열반은 멸(滅)로도 번역되기 때문에 열반을 허무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으나 멸(滅)은 갈애의 멸(滅)이지 마음 그 자체의 멸(滅)은 아니다. 갈애가 멸(滅)함에 따라 올바른 지혜가 나타나며, 그 자체에 의하여 알게 되는 부동의 진리가 열반(涅槃)이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연기의 법에 의하면 일체의 존재는 상호의존의 상관관계에 있으며,..

卍 ~불교 상식 2022.12.04

집제(集諦 : Samudaya)에 대하여

집제(集諦 : Samudaya)에 대하여 ​ ​ ​집제(集諦)는 괴로움의 원인을 말하며, 생존의 고(苦)가 되는 것은 모든 욕망의 근저가 되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인 갈애(渴愛)가 있기 때문이며, 갈애에는 욕애(慾愛-감각적 욕망), 유애(有愛-생존의 영속을 바라는 욕망), 무유애(無有愛-생존의 단절을 바라는 욕망)의 세 가지가 있다. 행복을 구하는 것도 욕망의 일종이지만 갈애는 욕망의 근본에 있는 불만족성으로 고(苦)를 발생시키는 것은 지나친 욕망의 상태에서 오는 것으로 본다. 중생은 욕망이 항상 지나쳐 갈애와 불길처럼 타오르는 번뇌의 상태에 속박되어 타율적이며 부자유스럽게 살아간다는 것니다. 불교는 욕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침을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집제는 갈애를 근본으로 하는 번뇌이며, 괴로움의..

卍 ~불교 상식 2022.12.03

고제(苦諦 : Dubkha)에 대하여

고제(苦諦 : Dubkha)에 대하여 ​ ​ ​고제(苦諦)는 현실세계의 참모습으로, 생존은 괴로움이라는 진리로, 인생의 고(苦)는 생노병사(生老病死)로 표시되며, 자연 현상으로서의 생노병사(生老病死)가 괴로움이 아니라 자신에게 일어나는 생노병사(生老病死)가 괴로움이라는 것을 말한다. 생노병사(生老病死)는 인생에 있어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자기존재의 기반이다.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괴로움(愛別籬苦 : 애별리고),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야 하는 괴로움(怨憎會苦 : 원증회고),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괴로움(求不得苦 : 구불득고), 괴로움의 근본인 오온(五蘊)에 집착하는 괴로움 (五陰盛苦 : 오음성고-생존에 대한 집착)의 넷을 더하여 8고(八苦)라고 합니다. 이것은 인생 전체는 고(苦)를 면할..

卍 ~불교 상식 2022.12.03

열반(涅槃 : Nirvana)에 대하여

열반(涅槃 : Nirvana)에 대하여 ​ ​① 어원은 니르바나(Nirvana)로, 불어서 끄는 것, 불어서 꺼진 상태를 뜻하며, 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 고뇌가 소멸된 상태를 말하며, 그때 비로소 적정(寂靜)한 최상의 안락(安樂)이 실현된다고 하며,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말한. ② 남방의 팔리 불교에서는 조림(稠林)이 없는 것으로, 번뇌의 숲이 없어진 상태를 열반이라고 한다. ③ 부파북교(剖派佛敎)에서는 석가불의 이상화, 신격화에 따라 열반에 대한 생각도 변하여, 이 세상에 생존하는 동안에 벌어진 열반은 체득하기란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여, 이 세상에 생..

卍 ~불교 상식 2022.12.02

열반적정(涅槃寂靜)

열반적정(涅槃寂靜)은 생사가 윤회(輪廻)하는 고통에서 벗어난 열반적정을 강조하는 것으로 모든 존재의 원래의 상태인 고요함, 즉 적정(寂靜)이 인간이 추구할 최고 행복으로서의 열반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미망은 자기의 주관을 절대시하거나 객관을 절대시하는 것에서 오는데 이러한 고정관념(固定觀念)에서 애착(愛着)이 생기며, 애착이 고(苦)를 낳는다. 따라서 주관(主觀)도 객관(客觀)도 결국은 무상(無常)이요 무아(無我)라는 사실을 통찰하여 분명히 인식하고, 그 위에서 집착 없는 실현이 이루어질 때 고(苦)를 면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죽음의 상태나, 소극적 지멸(止滅)의 상태가 아니라, 새롭게 순화된 종교적 자각과 실천행이며, 무상을 넘어선 절대생명의 활동으로, 거기서 나오는 가치전환의 즐거움, 그것이 곧..

卍 ~불교 상식 2022.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