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밭 ~ 행복한가 1534

온전히 당신을 생각하며 선물을 고르는 일

온전히 당신을 생각하며 선물을 고르는 일 그녀는 나보다 몇 살 아래다. 그렇지만 성정이 한결같아서 마음 바뀜이 심한 내겐 오히려 언니처럼 의젓해 보인다. 변함없이 첫 마음을 보듬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 그녀는 나를 비춰 보게 하는 거울이었다. 마음이 따뜻한 후배는 지인들에게 자주 선물꾸러미를 내민다. 그리 큰 부담을 주지 않는 아기자기한 것들이다. 하지만 남에게 줄 선물은 쉽게 결정되는 게 아니다. 받는 사람의 취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주고받는 일이 기쁨으로 간직될 수 있다. 몇 해 전, 나도 순면 셔츠를 선물 받았다. 물건을 사고파는 일에는 흥정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런 과정도 생략하려 애썼을 그녀가 뚱뚱한 내 옷을 고를 때는 얼마나 심사숙고했을까. 한 뼘 두 뼘 품을 가늠하며 작지 않을까, ..

문득 어느새 삶의 하류에 다다른 자신을 보는 일

문득 어느새 삶의 하류에 다다른 자신을 보는 일 ‘방심 상태가 되기 쉬운 인간을 가장 명상적인 상태로 만들고 그를 일으켜서 그의 발을 움직이게 해보라. 그 지방에 물이 있는 한, 반드시 물을 향해 걸을 것이다. 명상과 물은 영원히 인연을 맺을 것이다.’ 독서 노트를 뒤적이다 오래전 옮겨 적은 글귀에 눈이 멎었습니다. 허먼 멜빌의 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생각해 보니 방심 상태가 되기 쉬운 정도가 아닌, 늘 방심 상태로 살아가면서도 강을 오래 외면하고 살았습니다. 그것도 지척에 두고서 말입니다. 우리 마을은 전형적인 강마을입니다. 마을과 맞닿아 있는 암사동 선사 주거지에는 아득한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움집터와 탄화된 도토리, 돌도끼와 이음낚시, 빗살무 늬토기가 출토돼 이 강가에..

나에게 인생이 귀하다는 것을 가르쳐 준 시

나에게 인생이 귀하다는 것을 가르쳐 준 시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 조동화 시, 한 사람이 결코 작은 존재가 아님을, 하나의 응원과 사심 없는 위로, 축복이 함께 하는 시. 사람이 소중하다고 나에게 알려준 시. 시 한 편이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 힘을 보태줄 것을 믿는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 놓였을 때 가장 아름답게 빛난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 놓였을 때 가장 아름답게 빛난다 책상 앞에는 흑백사진 한 장이 걸려 있습니다. 매화가 활짝 핀 산사의 돌담을 찍은 것이죠. 진흙을 이겨 틈을 메우고 기와지붕을 얹은 담은 쌓은 지 오래된 듯 가운데가 주저앉았습니다. 제 자리를 벗어나 엉켜 있는 돌들에 초점을 맞춘 사진은 틈틈이 마음의 환기창이 되고 있습니다. 한동안 돌담 쌓는 일을 눈여겨본 적이 있습니다. 다니는 절에서 도랑을 정비하며 돌담을 쌓기 시작한 것입니다. 부도탑들이 놓인 야트막한 언덕 아래 돌담을 쌓아 흙의 유실을 막고, 고즈넉한 돌담의 운치도 감상할 수 있게 하려는 배려였습니다. 일주문을 들어서자마자 절 마당에는 어디서 운반해 왔는지 크고 작은 돌덩이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기중기가 커다란 돌덩이를 들어 제자리를 잡아 주면 ..

진심이 아니면 하지 않는다.

진심이 아니면 하지 않는다. 등단 전과 등단 직후, 외로웠을 때를 생각해 봐. 지금은 너무 감사하지. 쓸 수 있어서. 우리는 배 속에 부드럽고 따뜻한 물고기 하나 지나가는 것처럼 그 사실 하나로 안심했다. 그렇게 서로를, 그리고 자신을 위로했다. 어떤 계절엔 하루에 두 세 꼭지씩 원고를 써내기도 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카메라를 들고 취재 다니느라 밥 먹을 시간도 없다. 또 어떤 계절엔 꼼짝 않고 누워 며칠간 밖에도 나가지 않는다. 어떤 계절엔 적금을 깨서 등록금을 내고, 또 어떤 계절엔 미친 듯이 책을 읽고 시를 쓴다. 어떤 계절엔 늦은 마감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또 어떤 계절엔 아무도 없는 영화관에서 훌쩍인다. 어떤 계절엔 감사한 마음이 떠올라 용기 내어 장문의 문자를 보내고, 너무너무 외로..

오십이 넘으니 이제야 나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오십이 넘으니 이제야 나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얼마 전, 백화점 여성복 매장에서 함께 간 딸이 불쑥 말했습니다. “어? 나, 다리가 얇아졌나?” 마음에 드는 옷을 입어 본 뒤였죠.| “음, 글쎄~ 탈의실 거울 중에 좀 날씬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어.” 딸아이는 실망한 것 같았지만 거짓말로 기분을 맞춰주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싶었습니다. 진짜 모습은 원래 실망을 줄 때가 많은 법입니다. 나는 스스로 키가 작고 다부지게 살찐 체형인 것을 옛날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야 내가 목이 짧다는 것을 깨달았죠. 젊었을 때부터 깃이 좁은 옷을 입으면 답답해서 되도록 네크라인이 넓은 옷을 골랐었는데, 그건 내 목이 짧았기 때문이었나? 싶었습니다. 남에게 뭔가를 배우는데 서툴다는 것도 수영장에 다니면서 처음..

사업으로 모든 것을 잃은 선배에게 남긴 말

사업으로 모든 것을 잃은 선배에게 남긴 말 사업을 하다가 모든 것을 잃은 선배가 있습니다. 그 선배는 가진 돈을 다 잃고 결국 이혼까지 당했고, 가족과 멀리 떨어져 시골에 집을 구했습니다. 보증금도 없는 월세 20만원짜리 집은 낡고 허름했습니다. 선배는 ‘과연 이런 집에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농부인 집주인은 선배의 얼굴빛을 살피며 누추해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며칠 후 선배는 짐 몇 개를 들고 그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마치 폐가 같은 그 집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집 안에 들어선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 구할 때는 허름하기만 했던 집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완전히 수돗물에 씻어 놓은 듯했습니다. 집주..

너와 나의 적당한 거리는

너와 나의 적당한 거리는 거리를 모를 때는 정확한 거리를 알려주는 ‘반듯한 줄자 친구’가 있었으면 했다. 거리를 재다 그 거리가 멀어졌을 때는 여러 손을 가진 ‘문어 친구’가 있었으면 했다. #part1. 적당한 거리가 없어서 그때 그이와 관계를 계절로 표현하자면 여름과 겨울이었다. 뜨겁게 타다 차가울 때로 차가워진 관계, 그것이 그이와의 시작과 끝이었다. 20년이고 50년이고 계속해서 볼 사이라고 굳게 믿었던 이였다. 글에 대한 관심과 드라마 취향이 비슷해서 끌렸던- 아마도 그것이 관계의 시작이었지 싶다. 그런데 관계의 명확한 정리 이유를 아무리 쥐어짜고 또 짜서 생각해보려 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기억하기 싫은 건지도…)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그때는 사람과의 적당한 거리를 몰랐고,..

난 지금 행복한가, 그렇지 않은가

난 지금 행복한가, 그렇지 않은가 누구나 ‘이 사람과 함께라면 영원히 행복할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 속에 결혼합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막연함은 곧 막막함으로 바뀌곤 하죠. 큰 욕심을 부리는 것도 아닌데 그저 남들 사는 것만큼만 사는 것도 사실 엄청 힘든 일입니다.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고, 아이들이 자라남에 따라 들 어가는 돈은 무한정이죠. 누가 그랬던가요?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신혼 초 파이팅 넘치던 사랑과 열정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시간이 흐르고 일상에 찌들면서 어느 날 갑자기 그냥저냥 목표 없이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문득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 옵니다. 결혼을 잘못한 걸까? 사람을 보는 눈이 없었던 걸까? 왜 나는 능력..

할머니가 되면 짓고 싶은 나만의 집

할머니가 되면 짓고 싶은 나만의 집 앞으로 몇 년 안에 아이들은 차례차례 독립을 할 테고 그러면 분명 허전할 것이다. 넓지 않은 이 집도 텅 빈 듯 느껴질지 모른다. 그때가 되면 이 집을 좀 더 외부로 오픈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자란 집은 옛날 농가 구조여서 넓은 ‘봉당’이 있었다. 바닥이 시멘트로 되어 있어서 농사일을 하다 진흙이 묻은 발로도 다닐 수 있었다. 테이블과 의자, 겨울에는 스토브를 갖다 놓고 그곳에서 식사도 하고 가벼운 손님 접대도 했다. 반은 집 안이고 반은 집 밖인 듯 한 애매한 영역. 그게 무척 좋았다. 집의 일부를 신을 신고 올라갈 수 있는 봉당처럼 만들어 언제나 사람들이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집으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다. 식물도 많이 가져다 놓고, 책장을 나란히 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