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스님 좋은 말씀 2443

방망이 찜질 정도야

새벽잠을 뚫고 들려오는 도량석 소리는 왜 이리도 야속한지...... 전날 힘들게 일 했던 기운이 아직도 몸 이곳저곳에 피곤의 무게로 남아 있어서, 뻑뻑해진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그이는 조금 더 잘 수 없을까 하는 망상을 피워 본다. 그러나 문 앞을 지나 점점 멀어지는 도량석 소리에 까무륵 다시 잠에 빠져들 즈음, 큰스님의 방망이 자락이 퍼뜩 떠오르자, 곳곳에 남아 있던 피로 정도는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지난 저녁,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너무 들이켠 탓일까? 갑자기 느껴진 요의가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데 한몫을 한다. 간밤에 눈이 내렸나 보다. 온 세상이 하얗게 하얗게. 그야말로 은세계로 보인다. 여느 사람보다 낭만적인 부분이 무딘 임행자였지만 오늘같이 흰눈이 쌓인 새벽을 맞는 날은 포근한 기분에..

죄값치르기

벌써 며칠째인지도 모른다. 해우소에 가서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힘을 주지만 도대체 제대로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뱃속이 더부룩한 것이 마른 방귀만 뿡뿡 나올 뿐, 그 동안 뱃속으로 들어가고 필요없는 것들이 나놀 법도 한데 어찌된 일인지 뱃속으로 들어가기만 할 뿐, 밖으로 나오는 것은 며칠째 마음먹은 대로 되어주질 않았다. 추운 해우소에서 엉덩이가 시릴 정도로 한참을 노력해 보았지만 성과가 없었다. 해우소에서 나온 임행자는 배를 슬슬 문지르며 방으로 가다가 방향을 바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골방 쪽으로 걸어갔다. 골방에는 짚을 펴놓고는 그 위에 지난번 딴 감들을 소복소복 얹어 놓았다. 나무에서 막 딴 감은 떫고 입에 엉겨붙어서 무슨 맛인지도 몰랐는데, 며칠 사이 그 감들이 몰랑몰랑한 연시로 변해가고 잇었다...

큰스님 되거들랑....

겨울이 나날이 깊어지고 있나보다. 마른 나뭇가지 틈새로 '윙윙'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유난히 스산스럽다. 이 스산함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이맘때쯤이면 귀하디귀한 쌀을 송편을 만들어 먹는 일이 관례처럼 되어버렸다. 대중방에 모여 송편을 빚으면서 나누는 스님들의 얘깃소리 또한 겨울처럼 깊어져 화기애애함이 방안에 넘치고 있었다. 눈보다 뽀얀 쌀가루 속에 두 손을 쑤욱 넎고 임행자는 잠시 눈을 감아보았다. 차가운 감촉이 '싸' 하니 가슴가지 전해오는 듯했다. 그이는 그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손을 뺐을 때 분가루처럼 뽀얗게 손의 결을 따라 묻어나오는 가루를 '탁탁' 털 때, 여기 저기로 떡가루가 흩날리는 것 또한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동글동글한 송편이 어느새 한 소반 가득 빚어졌다. 대추,..

내 얼굴에 단풍 들면

저게 누구일까? 철없는 나뭇잎이 때이른 단풍옷을 꺼내 입은 것일까? 유난히 빨간 얼굴이 푸른 나뭇잎과 어우러져 단풍잎처럼 흔들리고 있다. 늦여름 한낮, 매미의 울음소리가 쨍쨍할 만도 한데 더위에 매미도 지쳤는지 우레 같은 고요만이 절안을 휘감아돈다. 목수들도 일손을 놓고 그늘 아래 달아오른 등을 눕히러 갔는지 보이지 않고, 공사장에 켜켜이 쌓아놓은 나무틈 사이 단풍 물든 얼굴의 주억거림만이 절의 고요를 건드리고 있다. 누구일까? 주억거리던 고개가 '휴' 하는 한숨소리와 함께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무렇게나 퍼질러앉은 채, 쓰윽 눈가를 훔치는 그 손의 오동통함이 그가 임행자임을 말해주고 있다. 토해내는 한숨소리에 떨떠름한 냄새가 진하게 배어 나온다. 또랑또랑하던 그의 눈빛이 초점 없이 알딸딸하니 풀려 앞에 ..

새 생명을 키우기 위해

둥둥 걷어올린 바지 밑으로 그의 늘씬한 무다리가 쓰윽 드러났다. 다리통이 얼마나 실한지 눈이 부실 정도다. 젖살이 아직 채 벗겨지지 않은 것 같은 뽀얀 종아리가 오월의 푸른 햇살을 받아 힘에 넘쳐 굼실거린다. 모내기를 하기 위해 물을 대어놓은 논에는 푸른 다리를 쭉쭉 뻗으며 헤엄치는 청개구리들이 물여울을 만들고 다녔다. 논두렁에 올라서서 헤엄치는 개구리들을 바라보다가 그이는 '첨버덩' 하고 논에 발을 들여놓았다. 눈에 띄지 않았던 작은 벌레들의 후다닥 놀란 움직임이 논무물에 작은 물살을 여기저기 만들곤 했다. 미끌미끌한 논바닥의 흙이 발가락 사이를 간지럽히며 파고들었다. 간지러운 듯 '이크 이크' 하며, 이 발과 저 발을 번갈아 떼어놓던 그이는 논두렁 위로 무심히 눈길을 돌리다가, 얼른 웃음을 거두고 제..

공부도 노동도

짧은 추녀 끝에 부서진 초여름의 햇살이 추녀를 넘어 방 안까지 넘실거리며 들어온다. 햇살은 파도보다 힘차게 그의 가슴을 쓸고는 밀려왔다 밀려간다. 잔뜩 물오른 산빛 또한 유혹의 손짓을 그치지 않는다. 멍하니 앉아 저쪽 산마루에 눈을 주고 있다가 몇 번이나 큰스님께 혼줄이 났던지...... 그이는 유혹의 손길을 덜쳐버리기라도 하듯 문고리를 당겨 문을 닫았다. 그러나 창호지 틈새로 들어온 햇살은 초발심자경문의 채찍과도 같은 힘찬 문구보다 훨씬 강하게 그이를 후려쳤다.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큰스님께 들은 '공부하라'는 소리는, 그 나이의 임행자에겐 별 의미가 없었다. 별로 중요한 일도 없이 그저 방 밖으로 내닫고자 하는 마음은 왜 그리 강한지...... 문득 그의 두 귀가 쫑긋해진다. 문 밖에 깜빡 어른대는..

아련한 옛추억

한 밤을 자고 일어날 때마다 산빛이 달라져 갔다.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아 들꽃들이 그 빛을 더욱 요염하게 뿜어내고, 나무 들은 겨우내 묵혀 두었던 땅 속의 진한 영양들을 힘차게 끌어올려 푸르게 푸르게 물이 올라갔다. 마치 산 전체가 '와와' 함성이라도 지르며 꿈틀끔틀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임행자의 오동통한 뺨에도 진달래 꽃물이 들었는지 볼이 더욱 발그레해졌다. 더구나 입술 근처까지 내려왔다가 올라가던 콧물줄기도 만발한 봄기운에 사라지고 말았는지 보이지 않는다. 절 근방에는 온 대중들이 모여 재담으로 배가 아프도록 웃기도 하고, 혹은 간간이 졸기도 하면서 '부처님 오신 날' 에 쓸 등을 만들고 있었다. 분주히 놀리는 임행자의 손 끝에도 겨우내 앉은 터더부리가 벗겨져 말간 빛을 띠고 있었다...

일상생활이 곧 수행

제일 먼저 산 속의 봄을 알린 것은 바로 임행자였다. 개울가 얼음 밑으로 졸졸졸 흘러가는 시냇물소리도, 저 산 너머의 아지랑이도 그이보다는 한 발 늦게 봄소식을 들고 나타났다. 산을 넘고 앙상한 나무의 둘레를 돌아 굽이굽이 달려온 봄은 자신이 가장 먼저 정착해야 할 곳으로 임행자를 찍었던 것 같다. 두리둥실한 엉덩이를 흔들고 다니는 폼이 별반 달라진 바는 없지만 어깨 위로 굼실대며 넘쳐나는 기운과 턱 주위로 일렁이던 솜털이 자취를 감추고, 마악 새싹이라도 돋을 것처럼 성글어진 그의 살결이 무엇보다도 더욱 완연하게 봄을 말해주고 있다. 어느덧 그이가 절에 온 지도 이태가 지났다. 웬만한 절 살림 정도야 이제는 식은 죽 먹기처럼 한눈에 훤히 들어왔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주제넘게 참견과 잔소리 하는 폼이 ..

망상이 치성하면 할수록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임행자는 분주해졌다. 팔방구리 드나들 듯 여기 삐쭉 저기 삐쭉 들여다보곤, 금세 다른 곳으로 내달았다. 그런 그이를 보고 원주스님은 한마디 놀리기를 잊지 않앗다. "이놈, 임행자야, 엉덩이에서 휘파람소리 난다." "내 엉덩이에서 휘파람소리 나면 스님 엉덩이에선 가죽피리소리나게요? 치이." "아니, 저놈이....." 그이는 처음 절에 왔을 때의 조심스러웠던 마음은 어디 가고 이제는 스님들께 눈을 흘기며 툭툭 말대꾸와 변명도 많아졌다. 그래도 큰스님은 묵묵부답 아무 말씀도 않으셨다. 그리고 웬걸? 큼지막한 팔목시계 하나를 선물하시기까지 하셨다. 그이의 치기는 나날이 무성해졌다. 임행자의 마음은 봄날 햇살 속에 부유하는 먼지처럼 자꾸만 붕붕 떠다녔다. 마음을 다잡아 아랫배 밑으로 겨우 끌어..

삼천배로 신심을 돋우고

떨어지지 않으려는 새벽잠을 겨우 떼어내고 나와 선 법당의 기운이 며칠 전하고는 영 달랐다. 두 손을 맞대고 합장한 손끝이 '싸' 하니 차가워지는 게 요 며칠새 봄날씨 같던 기운하고는 딴판이다. 이빨마저 딱딱 맞부딪치는게, 물러갔던 동장군이 기세등등하게 다시 찾아온 것이 분명하였다.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절을 하면서 이마를 바닥에 대자 찬기운이 까까머리를 타고 흘러 들어왔다. 순간, 임행자는 머리속이 확 열리는 것처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 정도 추위라면 앞 논의 물도 꽁꽁 얼어붙었을 것이 분명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급한 속마음하고는 딴판으로 더디게 새벽예불이 끝나고, 느릿느릿 나가는 스님네들을 보며 나갈 차례를 기다리는 그의 속은 불이 났다. 겨우 차례를 맞아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