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스님 좋은 말씀 2443

삼업과 삼독

삼업과 삼독 ​ 선재동자에겐 과실이 없다고 했다. 과실이란 죄와는 사뭇 다르다. 죄는 하고자 하는 생각 속에 고의적으로 저지른 것이지만, 과실은 조심하였으나 실수로 저지른 것을 의미한다. ​ 대낮에 맨 정신으로 부모에게 폭행하는 것은 크나큰 죄가 되지만, 잠결에 잠버릇이 심해 부모를 차는 것은 과실인 셈이다. 고의로 저지른 일은 그 죄값을 받아야 하나 과실의 경우는 용서하여야 한다. ​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신. 구. 의 삼업이라고 한다. 인간이 짓는 업이 크게 이 세 가지로 삼독인 탐. 진. 치는 바로 뜻으로 짓는 의업이다. ​ 이를 바로 깨달아 업을 쌓으면 선업이라 하고, 역으로 일을 저지르면 악업을 쌓는다. 선업을 쌓으면 선근이 생겨, 그 그림자로 나타나는 것이 재물이라 하겠다. 즉 선근을 심은 과..

불교를 믿으면

불교를 믿으면 부처님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다. "불교를 믿으면 이미 생긴 악(惡), 나쁜 것들은 줄어들고 아직 안 생긴 나쁜 것은 안 생기고, 막아지고, 이미 생긴 선(善)은 늘어나고, 아직 발생하지 않은 선은 발생한다." ​ 파사현정(破邪顯正).. 삿된 것을 깨트리고 올바름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고 삿된 것이 깨지는 동시에 올바름이 맞보기로 들어오는 것처럼, 양명한 기운이 들어서서 밝은 빛이 있으면 어둠은 스스로 물러난다. 어둠을 물리치고 빛이 오는 게 아니고, 밝아지면 스스로 어둠은 없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양면성이고 동시성이다. ​ 이 말씀은 8정도의 정진(精進)과 같은 의미의 말씀인데 괴로움도 마찬가지다. 즉 괴로움이 소멸하면 그 상태 그대로 행복인 것이지 따로 무엇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닌데 마치..

사참과 이참

사참懺과 이참理懺의 두 가지 구원 사람은 도에 뜻을 두고 살아야 하는데, 보통 죄를 지어 오히려 극악의 길을 걷기 쉬운 것이 현실인 것같다. 그렇다면 극악한 죄악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 종교에서 구원의 문제는 가장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크게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참事懺이요, 다른 하나는 이참理懺이다. 사참이란 밖으로 참회하는 것으로, 자기가 무의식적으로 죄를 범했을 때 부처님 앞이나 선지식앞에 자신의 잘못을 낱낱이 밝히고 서광瑞光을 보거나 인정을 받는 것이다. ​ 반면 이참은 죄란 본래부터 없다는 것을 마음으로 관조하여 설령 1백년 동안 지은 죄라고 할지라도 한 생각으로 없애는 것이다. 일종의 관법 수행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죄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죄는 망상으로..

자신을 모르면

자신을 모르면 자기를 알지 못하면 고통 속에 살게 된다 자신이 누구 인지를 시시각각으로 느끼고 알아차리야 한다. 자신을 살피는 공부가 지속되면 천천히 업식이 변하여 가고 업장이 변하여진다. 지혜는 책장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무명과 무지를 걷어내지 못하여 자성의 밝은 지혜를 가지고도 일지 못하여 가리고 있는 것이다. 괴로움과 고통의 원인은 무지와 미혹함에서 생긴 것이다. 고통의 원인 인과의 이치를 알지 못하면 탐, 진, 치. 삼독에 빠저 해어 나지를 못해 괴로운 것이다. ​모든 괴로움은 인과에 의해서 발생한다. 인연을 반연하여 고와 락이 갈라지고 또 다른 연기로 인해 행 불행이 벌어진다. 고통은 원인에 의해 생기고 고통은 원인을 언제나 수반한 것이다. 고통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 행복이 있으면 ..

조상 천도

조상 천도 매달 지장재일을 천도하는 날로 정해서 조상 천도의 효심을 실천에 옮기는 행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영혼도 생명이요, 살아있는 육신을 가지고 있는 것도 생명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육체가 없는 속에서 하나의 움직이는 기가 있는데, 움직이는 신령스러운 그 기운은 육체가 있고 없고 하는데 관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잠자는 속에서도 꿈에 멀리 달아나기도 하고, 몸이 없이도 허공에 날기도 하고, 먼 지방에 가기도 하고, 꿈에 산삼도 캐고 금도 줍기도 하지만, 그게 몸뚱이 하고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몸뚱이는 가만히 있는데 사방에 가거든요. 그래서, 영혼을 천도하는 것이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복과 덕을 심는 데는 최상이라 했습니다. 항상 복을 받고 잘 살려면 천도를 잘해주라고 했습니다. ​ 우리가 눈..

살생

살생 우리는 이유 없이 중생들을 해치고 중생을 죽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를 겁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길을 갈 때 내 발아래 얼마나 많은 작은 벌레들이 밟혀 죽는지 모릅니다. 우리 육안으로는 아주 작은 생명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 또한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만약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길을 가기 시작할 때에 게송을 하나 염송해야 합니다. ​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체 중생은 스스로 피하십시오. 만약 발밑에서 형상을 잃은 중생이 있다면 곧바로 정토에 나기를 발원합니다. ​ 생각 생각 관상으로 이 중생들을 모두 극락세계로 보냅니다. 내가 다치게 했는지 아닌지를 모르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서 이 게송을 먼저 염송합니다. 마치고 침대에서 내려와서 신발을 신고 길을 갈 때 설사 잘..

음행

음행 오늘날 우리의 삶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서구문명의 물결을 타고 흘러가고 있다. 어떤 것은 좋은 쪽으로 개선되는 부분도 있지만, 좋지 않은 많은 것들이 지나치게 앞질러 가고 있어 매우 걱정스럽다. 그 중 가장 심각한 것 가운데 하나가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남녀의 애정문제이다. 우리가 도덕적인 면에서 불건전한 서구의 풍조를 굳이 따라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니, 이유를 따지기 전에 남녀가 너무 쉽게 결합하고 너무 쉽게 헤어지는 풍습은 마땅히 지양되어야 한다. ​ 남녀의 애정 결합이 순수하고 진실하고 끝까지 변하지 말 것을 전제로 할 때 값진 삶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게 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일편단심! 일념의 사랑은 이 세상을 바꾸어 놓는다. 일념의 사랑은 모든..

여섯 가지 신통

여섯 가지 신통 제가 삼명육통이란 말을 자주 하는 편인데, 더러는 '삼명육통은 외도꾼들이 하는 것인데..' 하며 뒤에서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 줄 압니다. 우리가 신통을 하려고 일부러 애쓸 필요는 없지만, 부처님 말씀에 공부가 되면 저절로 신통이 나온다고 했단 말입니다. 그 말씀을 어떻게 무시할 것입니까? 실제로 무수한 성자가 다 증명을 했고, 지금 종교인들이 불신받는 세상에 삼명육통을 하는 도인이 있다고 생각을 해본다면 집단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제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지금은 컴퓨터 문화가 기기묘묘한 재주를 다 냅니다만, 우리 불성은 그런 류가 아닌 것입니다. 컴퓨터는 인간이 입력을 시켜야 나오지만 그보다 훨씬 더 무한한 성능이 우리 불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불성을 계발하면 그런 컴퓨터..

속 썩이는 자식

속 썩이는 자식 우리가 육근(六根) 육식(六識)으로 대하는 현상은 인연(因緣) 관계일 뿐이에요. 유식한 말로 연기법(緣起法)이라고 그래요. 서로서로 원인이 결과가 되고, 결과가 원인이 되고, 태어났으면 죽고, 봄이 되면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고 계절이 바뀌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돌아가는 이 모습들을 현상, 그걸 연기법이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당연한 결과들이 지금 나타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 규정을 짓고 거기에 기분이 좋고 나빠지면 그건 제 업(業)이 발동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부처님이나 보살님이나 조사스님이나 아라한들은 이미 마음을 깨친 분들이기 때문에 어떤 것을 봐도 기분이 나쁘지 않아. 어떤 것을 들어도 기분 나쁘지 않아. 태풍이 와도 별로 마음이 안 동해. 지진이..

자비의 뜻

자비의 뜻 사랑은 주는 것이다 / 광덕 스님 불교에서 자비의 뜻은 고를 없애고 즐거움을 주는[拔苦與樂] 것이다. ​상대방의 괴로움을 자기 괴로움으로 알고 그 괴로움을 없애주며 그에게 기쁨을 준다는 것은 끝없는 사랑이없이 어찌 가능할까. ​ 자타(自他) 대립이 없이 온 중생을 자기로 삼는 커다란 참자기에 눈떴을 때 일체중생에게 조건없는 동체의식(同體意識)이 흘러나오는 것이니 이것이 대자대비(大慈大悲)이고 보살의 마음이다. ​ 부처님께서는 조건없는 무한의 사랑을 가르치신다. 무연대비(無緣大悲), 무차대비(無遮大悲)다. 이런 믿음에서 [여러가지 중생들을 수순하여 받아 섬기며 가지가지로 공양하기를 부모와 같이 공경하며 스승이나 아라한이나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이 받드는]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보살의 행이 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