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 어둠속 등불 1389

파계사 중창설화

파계사 중창설화 파계사에는 조선후기 숙종 때 현응대사(玄應大師)가 일으킨삼중창 대한 설화가 전한다. 조선에 들어 억불정책으로 인해 사람취급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스님들은 갖가지 부역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러한 사정은 파계사도 예외는 아니어서 어느 날 현응스님은 파계사만이라도부역을 없애고자 하리라는 원(願)을 세우고, 7백여 리의 길을 걸어 한양성에이르렀다. 그러나 당시에는 승려의 도성출입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남대문 밖에서 머물면서 한강물을 져다가 민가에 날라주며 때를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느덧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숙종은 남대문 2층에 올랐더니 남대문 밖의 세 번째 집위에서 청룡과 황룡이 찬란한 광명을 놓아 하늘에 사무치는 꿈을 꾸었다.그..

동화사 창건설화

동화사 창건설화 동화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하는데, 그 중 하나는 「동화사사적비(桐華寺事跡碑)」에 의한 것으로 493년(신라 소지왕 15) 극달화상(極達和尙)이 창건하여 유가사(瑜伽寺)라 부르다가 832년 (흥덕왕 7) 심지대사가 중창할 때, 오동나무가 겨울에 상서롭게 꽃을 피웠다 하여 동화사로 고쳐 불렀다하는 설이다. 다른 설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려 있다. 이에 따르면 진표율사(眞表律師)로부터 영심대사(永深大師)에게 전해졌던 불간자(佛簡子)를 심지(心地)가 다시 받은 뒤, 이 팔공산에 와서 불간자를 던져 떨어진 곳에 절을 이룩하니 곧 동화사 첨당(籤堂) 북쪽의 우물이 있는 곳이었다는 창건설화가 실려 있다. 이 두 가지 설 가운데 극달의 창건에 대해 극달이 창건했다고 전하는 493..

증심사 창건설화

증심사 창건설화 증심사는 창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독특한 연기설화를 지니고 있다. 아득한 옛날 무주 땅에 한만동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야기는 한씨가 태어나기이전, 그의 할아버지가 태수벼슬을 할때부터 시작된다. 당시 할아버지인 한태수가 며느리를 보기 위해 날짜를 잡아놓은 어느 날이었다. 그 집에는 기운은 장사지만 술을 좋아하고 싸움을 잘하여 매번 말썽을 일으키곤 하는 ‘득’이라는 하인이 있었는데, 한태수는 그에게 심부름을 보냈다. 그런데 몇 시간이면 넉넉히 다녀올 곳을 온종일이 지난 뒤에야 엉망으로 취한 채 비틀걸음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태수는 화가 치솟아 불호령을 내렸다. “네 이놈! 명을 받아 일보러 간 놈이, 감히 어디 가서 술에 취해 이제야 오는거냐!” “이 노릇도 못해먹겠다.” 득이는 ..

축서사 창건설화

축서사 창건설화 신라시대에 강원도 수다사(水多寺)에서 수도하던 자장율사가 태백산을 찾아 헤매던 "문수보살"이 이 산에 화현하였다하여 문수산이라 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누다에 고관대작과 노승성불(老僧成佛)이 난다는 전설이 있으며, 문수산은 독수리가 우크리고 앉아 있는 형국이라고 하여 축서사가 자리잡은 터는 독수리가 짐승을 낚아채는 순간의 형국이라 해서 축서사로 명명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불법에서 "날카로운 지혜"는 독수리의 부리와 같은 이치에서 대승 보살중에 지혜가 날카롭고 뛰어난 문수보살의 이름을 따서 문수산 이라는 지명을 사용하였다고도 한다. 또한, 전설에 의하면 물야면 개단리의 결단이라는 곳에 지림사(智林寺)라고 하는 절이 있었는데,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화엄학을 공부하고 귀국한지 얼마 후 어느..

용화사 정승바위

용화사 정승바위 옛날 이곳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예지 2리(내립석)에 이씨 성을 가진 정승이 있었다. 이 정승은 벼슬자리에 있을 때라 한양(서울)에서 살았고 이곳에는 그의 부인이 홀로 2층집을 지키며 살았는데 부인 김씨는 남편과 너무 오래 떨어져 살았기에 남편이 보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어느 날 때마침 노승이 시주를 하라고 찾아왔다. "스님, 제가 영감님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겠어요?" 부인은 쌀 한 말을 시주하면서 노승에게 애원하듯 물었다. "글쎄요, 있긴 있는데....." "네에, 말씀해 주세요, 어떤 것이든 하겠어요. 영감님과 만날 수 있다면요." 노승은 마당 한가운데 있는 연못을 가르키며 "저 못에 소금을 석 섬 뿌리시오. 그리고 동리 입구에 불쑥 튀어나온 바위를 깨뜨리면 소원을 이..

오어사 창건설화

오어사 창건설화 ​ 오어사는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절로서 처음에는 항사사라고 불렀다. 오어사라는 이름은 혜공선사와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겨루기 위해 물고기를 각각 잡아 먹었다가 다시 살려 내는 내기를 했다. 그러나 살아난 고기가 한 마리밖에 없자 두 스님이 나의 고기 (吾魚)라고 말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절에는 혜공, 원효, 자장스님, 삼국유사를 지으신 일연스님 등 훌륭한 스님들이 수도를 한 곳이다. 문화재 자료 제 88호로 지정된 앞면 3칸, 옆면 2칸의 문과 팔작 지붕으로 된 대웅전이 있으며, 보물 제 1280호로 지정된 고려 동종은 1995년 오어지에서 발견된 것으로 조성 연대가 분명하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귀중한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원효대사의 삿갓과 수저도 특이한 볼거리이다. 천 년..

봉정사 창건설화

봉정사 창건설화 ​ 절이 들어선 천등산을 옛날에는 대망산(大望山)이라 불렀다. 산 정상 가까이에 거무스름한 바위가 하나 있고, 이 바위 아래 동굴이 있는데 천등굴이라고 하였다. 능인 대덕(혹은 의상 대사)은 늘 이곳에서 깨달음을향한 수행정진에 몰두하였다. 어느 날 선녀가 나타나 온갖 방법으로 스님을 유혹하였으나 스님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곁눈조차 주지 않았다. 결국 선녀는 포기하면서, “스님은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이제 스님의 깊은 의지를 알았으니 부디 깨달음을 이루시길 빕니다. 스님의 수행에 도움이 되도록 옥황상제의 등불을 남기고 떠납니다.” 라고 하였다. 선녀가 말을 마치자 곧 바위 위에 커다란 등이 놓였고, 굴 안이 대낮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스님은 이후 부단한 노력으로 지혜를 얻었고, 이로 인해..

보리사 경주 남산설화

보리사 경주 남산설화 ​ 『아주 오래 전 쇠벌이라 불리던 경주는 맑은 시내가 흐르는 푸른 벌판이었다. 평화로운 쇠벌에 두 신이 찾아왔다. 맑은 시냇가에서 빨래하던 처녀가 두 신을 보았다. 강한 근육이 울퉁불퉁한 남신과 부드럽고 고운 얼굴의 여신이었다. 두 신은 아름답고 기름진 쇠벌의 경치를 둘러보더니 남신이 입을 열어 "우리가 살 곳은 바로 이 곳이로구나!" 하고 외쳤다. 이 때 강가에서 빨래하던 한 처녀가 너무 놀라 "저기 산 같은 사람 봐라!" 해야 할 것을 "산 봐라" 하고 소리를 질려버렸다. 비명에 놀란 두 신이 발길을 멈추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다시는 발을 옮길 수 없었다. 처녀의 외침으로 두 신이 산으로 변화게 된 것이다. 여신은 남산 서쪽에 아담하게 솟아오른 망산이 되었고, 남신은 장엄한 남..

백률사 부례랑

백률사 부례랑 ​ 삼국유사에 백률사 대비관음상의 영험과 관련된 설화가 다음과 같이 전한다. 692년(효소왕 1)에 국선(國仙)이 된 부례랑(夫禮郞)은 693년 3월에 화랑의 무리를 거느리고 강릉 지방에 이르렀다가 말갈족에게 잡혀갔다. 일행들은 당황하여 돌아갔으나 안상(安常)만 홀로 그를 뒤쫓아 갔다. 효소왕은 이 소식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는데 그 때 상서로운 구름이 천존고(天尊庫)를 덮으므로 창고를 조사하게 했더니 현금(玄琴)과 신적(神笛)의 두 보물이 없어졌다. 5월 15일 부례랑의 부모는 백률사 관음상 앞에서 여러 날째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향나무로 만든 탁자 위에 현금과 신적이 있고 부례랑과 안상 두 사람도 불상 뒤에 와 있는 것이 보였다. 부모가 놀라 물었다. 부례랑이 적에게 잡..

도리사 창건설화

도리사 창건설화 ​ 아직 겨울이라기엔 이른 늦가을이었다. 옷은 비록 남루했지만 용모가 예사롭지 않은 한 고구려인이 신라 땅 일선군(지금의 경상북도 선산)에 있는 부자 모례장자 집을 찾아왔다. "어떻게 제 집엘 오시게 되었는지요?" 모례장자는 행색과는 달리 용모가 순수한 낯선 객에게 점잖고 융 숭하게 대하면서도 일말의 경계를 금할 수 없었다. "나는 묵호자라는 고구려 승려입니다." 인연이 있는 땅이라 찾아왔으니 나를 이곳에 묵을 수 있도록 주선하여 주십시오." 당시는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지 않은 때인지라(눌지왕 때) 모례장자는 묵호자의 불법에 관한 설명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전생부터의 인연이었는지 아무래도 낯선 객이 신비스럽고 큰 불도를 알고 있는 대인인 듯하여 지하에 밀실을 지어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