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08 7

작은 배려

작은 배려 공주처럼 귀하게 자라서 부엌일을 거의 안해본 여자가 결혼해서 처음으로 시아버지의 밥상을 차리게 되었답니다. 오랜 시간이 걸려만든 반찬은 그런대로 먹을만 했는데 문제는 밥이었습니다. "식사 준비가 다 되었느냐?" 는 시아버지의 말씀에 할 수 없이 밥같지 않은 밥을 올리면서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며느리가 말했습니다. "아버님 용서해 주세요!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것을 해왔습니다! 다음부터는 잘 하도록 하겠습니다!" 혹독한 꾸지람을 각오로 하고 있는 며느리에게 시아버지는 뜻밖에도 기쁜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가야,참 잘됐다! 실은 내가 몸살기가 있어서 죽도 먹기 싫고, 밥도 먹기 싫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것을 해왔다니 정말 고맙구나!" 이 사소한 말 한마디가 며느리에..

인간은 짐승과 다를 게 없다

인간은 짐승과 다를 게 없다 축생관(畜生觀) ​ 서구인들은 다른 동물과 차별되는 인간의 특성에 대해서 다양하게 정의해왔다. 생물학에서는 호모사피엔스(Hom0 Sapiens),라고 부른다.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하위징아(Huiwinga)는 호모루덴스(Homo Ludens)라는 신조어를 창안하였다. '유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놀이와 농담과 여가를 즐기는 것이 사람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도구를 만들 줄 안다는 의미에서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bergson)은 호모파베르(Homo Faber)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슬기'나 '놀이'나 '도구' 모두 인간만의 본질은 아니다. 어떤 동물이든 자신이 처한 독특한 환경에서 몸을 보존하는 놀라운 '슬기'를 갖추고 있..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야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야 흘러가는 물은 조금도 오차가 없다. 잘못 없이 흐르는 길이 물의 길이다. 물은 언제나 수평을 의지에서 높으면 천천히 채워서 흐르고 모나면 모난 대로 둥글면 둥근 대로 모양 따라 부딧치며 흐른다. 흘러가는 물이 대해중보살 마하살 이다. 구름은 비의 원천이다. 구름의 모임에 따라 농도가 짙어지고 폭풍우가 되고 태풍이 된다. 농도가 부드러우면 이슬비 보슬비 안개 가랑비가 되어 곱게내린다. 이렇듯, 흘러가는 물이 상주 설법을 하고 흐르며. 하늘의 뭉개 구름도 항시 상주 설법을 하고 허공을 자유자재 한다. ​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서 새로운 사람이 돼야 한다.흘러가는 물. 하늘의 뭉게구름을 알고 볼 줄 모르면 심오한 깊이의 지혜를 얻기란 어렵다. 발심.= 잘살겠다는 마음 성공하겠다는 마음..

인간 사회의 영원한 균형추

인간 사회의 영원한 균형추 실리가와 이념가 ​ 우리 사회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한 부류는 '금력'이나 '권력'과 같은 동물적인 힘을 지향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부류는 그런 동물적인 힘보다 '정의'나 '자비'와 같은 보편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싯다르타 태자의 탄생설화에서 거론하는 전륜성왕은 전자에 햐당하지만, 부처님은 후자의 길을 선택하셨다. 현대사회에 적용하면 유능한 기업가, 종속적 정치인 등은 전자에 해당하고 '올바른' 법조인, 언론인, 교육가, 시민운동가, 그리고 종교인은 후자에 해당한다. '물질적 이익'이나 '세속적 명예'를 목표로 삼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전자를' 실리가(實利家)'라고 명명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든 '정신적 가치'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후자를 '이념가(理念家)'..

내 건강을 위해 살생을 하게 되면

내 건강을 위해 살생을 하게 되면 - 법륜스님 즉문즉설 - ​ ▒ 문 제가 다리가 불편해서 치료를 받던 중에 벌침을 맞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벌을 죽이는 살생이 마음에 걸려 그만두었습니다. 그런데 요새 남편이 벌침 효과에 집착하면서 계속 벌침을 맞으려고 욕심을 냅니다. 그러자면 제가 시침을 해줘야 하는데, 침 한번 놓고 벌이 죽어가는 걸 보기가 괴롭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쓰자고 해도 말을 안듣고 오히려 화를 내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 답 미물이라도 함부로 죽여선 안되지만, 치료를 위해서 꼭 그래야만 되는 사정이라면 벌침 놓기 전에 '내 살라고 너희들 이용해서 미안하다, 죽어서 좋은 데 가라..' 염불해 주고 그 참회의 마음으로 보시금을 좀 준비해서 어려운 이들을 돕거나 환경보호를 위해..

구멍 난 양말을 버릴 때

구멍 난 양말을 버릴 때 1%도 안 되는 표면적이 전체를 장악한다. 멀쩡한 99%는 한순간에 식민지처럼 정체성을 잃는다. 오직 구멍이다. 비정상이다. 빼앗긴 정상에 봄은 오지 않을 것이다. 내 인격 전체가 이에 낀 고춧가루 같은 구멍의 중력장을 빠져 나가지 못한다. 신발 벗을 일이 생길 때의 수치심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래서 구멍 난 양말을 버리기에 여전히 탱탱한 발목 밴드가 측은하다. 닳아가는 징조 없이 느닷없었다. 엄지발가락 끝도 아니고 발바닥 측면이었다. 마찰이 덜 한 부분이 먼저 헐어버린 물리적 사연은 궁금하지 않았다. 내 걸음 걸이에 변화가 생겼을 수도 있었고, 우연히 씹힌 돌이 날카로웠을 수도 있었다. 혹은 미세 외계인이 침략한 흔적일 수도 있었다. 뭐가 됐든, 한 켤레 1,000원짜리였다...

이 세상 곳곳 어른아이가 숨어있다

이 세상 곳곳 어른아이가 숨어있다 부모님이 장애를 갖고 있거나 신체질환이나 정신질환 때문에 보호자가 되어버린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을 ‘영케어러(young carer)’ 또는 ‘가족돌봄아동’이라고 부릅니다. 얼마 전, 어느 가족돌봄아동 가정에서 안타까운 사연을 보내왔습니다. 중증 장애인 부부는 아이를 무척 좋아하여 자녀 둘을 낳았습니다. 자녀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고 부족한 것 없이 돌보아주고 싶었지만, 꿈꾸었던 가정의 모습과는 달리 장애는 발목을 잡았습니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감당해야 했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못해서 부부는 항상 마음속이 저렸습니다. 그리고 큰 아이는 동생의 보호자가 되어 집안의 소일거리를 도맡아서 했습니다. 하지만, 남들 눈에는 의젓해 보일지라도 아직 어린아이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