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 의상(義湘)은 그 아버지는 한신(韓信)이라 했으며, 성은 김씨다. 나이 29세에 서울[경주] 황복사(皇福寺)에서 머리를 깎아 스님이 되었다. 얼마 후 중국으로 가서 부처의 교화(敎化)를 보고자 마침내 원효와 함께 요동(遼東)으로 갔다가, 변방(邊方) 순라군(巡邏軍)의 정탐자에게 잡혀 있기 수십 일에 간신히 빠져 나와 돌아왔다. ―사실이 최후(崔侯=최치원)가 지은 의상본전과 원효대사의 행장에 있다.― 영휘(永徽) 초년에, 마침 당나라의 사신으로 본국에 돌아가는 사람이 있었으므로 그 배에 실리어 중국으로 들어갔다. 처음에 양주(場州)에 머물렸더니, 주장(州將) 유지인(劉至仁)이 의상을 청해다가 그 관아(官衙) 안에 머무르게 했는데, 접대가 매우 성대했다. 조금 뒤에 종남산(終南山) 지상사(至相寺)를 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