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일석은 과거에 또 낙방하고 터덜터덜 한달 만에 집으로 내려왔다.삽짝을 열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고개 들어 집을 보니 초가삼간 지붕은 썩어서 잡초가 우거졌고 마루짝은 꺼져 이빨이 빠질듯하고 기둥은 기울어져 집이 쓰러질 듯하다. “아부지!” 삼남일녀가 맨발로 마당을 가로질러 남루한 황일석의 두루마기에 파묻힌다. 부엌에서 뛰쳐나온 아이들 에미는 남편의 표정에서 또 낙방했다는 사실을 읽고 털썩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지만 애써 미소를 지으며 “몸 성히 다녀오셨어요?” 하고 인사를 한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지 애비 두루마기를 잡고 반가워서 야단인데 말뚝처럼 우두커니 선 황일석의 두눈엔 눈물이 가득 고였다. 황일석은 곰팡이 슨 방으로 들어가 책을 한아름 들고 나와 부엌 아궁이 앞에 쏟았다. “여보! 이게 무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