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태자의 태묘 조선 제 16대 임금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로 피난 갔을 때였다. 왕과 함께 공주로 내려온 왕후는 피난지에서 옥동자를 분만하니 그가 바로 아지대사였다. 난중이긴 했지만 왕손을 얻게 돼 상감과 조정대신들은 모두 왕자의 탄생을 축하하며 기뻐했다. 왕후가 해산을 치르고 얼마 안되어 아직 산고도 채 가시지 않았는데 상궁이 중전에게 아뢰었다. 「중전마마!」 「왜 그러느냐?」 「태를 태합에 담았사옵니다.」 「그럼 어서 묻도록 하여라.」 당시 왕손의 태는 담아 무덤 형식의 분을 만들어 묻었다 한다. 중전의 허락을 받아 아지대군의 태는 공주에서 가까운 계룡산에 정성스럽게 묻혔다. 궁을 떠나 피난지에서 태어나 아지대군은 주변이 어수선해서인지 태어나면서부터 잘 먹지를 않고 어쩐 일인지 자주 않기..